카뮈의 『페스트』로 본 위기 속 인간다움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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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단순한 전염병 소설이 아니다. 이 작품은 재난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이 보여주는 윤리, 책임, 연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재난 앞에서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을까? 『페스트』는 그 물음에 대한 문학적 성찰을 제시한다.
1: 재난이라는 무대, 인간 본성의 드러남
『페스트』는 알제리의 오랑이라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전염병이 확산되며 벌어지는 사건들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은 전염병이라는 비상사태가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는 일종의 시험대가 된다는 점에서 단순한 감염병 이야기로 보기 어렵다. 카뮈는 이 상황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반응을 통해 인간 본성의 여러 단면을 조명한다. 처음 페스트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이를 부정하며 일상의 지속을 고집한다. 공포를 외면하고 희망으로 포장하려는 심리는 인간이 위기에 처했을 때 얼마나 쉽게 현실을 외면하려 하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일부 인물들은 이성적으로 사태를 직시하고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며 행동한다. 특히 리외 의사는 냉철하고 묵묵히 환자를 돌보며, 자신이 믿는 의무를 다하기 위해 끝까지 싸운다. 그는 신념이나 영웅주의가 아니라 '해야 할 일'이기에 실천한다는 점에서 인간 윤리의 본질을 보여준다. 이는 카뮈가 말한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윤리적인 자세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재난 앞에서 공포와 이기심에 휘둘릴 수도 있지만, 동시에 타인을 위해 연대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페스트』는 이러한 가능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며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되묻게 한다.
2: 부조리와 연대, 카뮈 철학의 구현
카뮈의 철학은 부조리의 인식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의미를 갈망하지만 세계는 무의미하다는 인식, 그 틈에서 발생하는 충돌이 바로 부조리이다. 『페스트』는 이러한 철학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대표작이다. 이 작품에서 페스트는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위협하는 무의미하고 불가해한 현실을 상징한다. 리외 의사와 타루, 랑베르 기자, 그랑 같은 인물들은 각기 다른 동기로 행동하지만, 모두가 결국 공동체와 타인을 위해 자신을 던진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이들은 세계의 부조리함을 받아들이면서도 이에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윤리적인 행동을 선택한다. 이는 부조리를 인식하되, 그것을 이유로 무기력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연대를 통해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나아간다. 타루는 특히 페스트와 싸우는 이유에 대해 "성인이 되기보다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이는 인간 존재의 진정한 가치가 이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과 책임에서 비롯된다는 카뮈의 철학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은 완전할 수 없지만, 서로를 위해 행동하고 함께 고통받을 수 있는 존재다. 『페스트』는 이러한 연대의 윤리를 문학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부조리한 세계에서도 인간다움은 가능한지를 독자에게 묻는다.
3: 『페스트』가 우리에게 던지는 윤리적 질문
『페스트』는 시대와 상황을 초월해 읽히는 작품이다. 전염병은 비단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에도 우리를 위협하는 현실이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이 작품은 다시금 조명되었고, 많은 독자들이 인간과 사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재난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타인을 배려하고 공동체를 위해 행동할 수 있는가. 자가격리나 사회적 거리두기처럼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선택 앞에서 우리는 과연 이기심보다 연대를 선택할 수 있는가. 『페스트』는 이러한 윤리적 질문을 문학이라는 매체를 통해 던진다. 그리고 그 대답은 결코 단순하거나 이상적이지 않다. 카뮈는 인간이 완전한 존재가 아니며, 언제든 이기적이고 무기력한 태도로 빠질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위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위해 행동할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이는 윤리가 강요나 이상주의가 아니라, 스스로 감당하고 선택하는 '실천'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결국 『페스트』는 윤리에 대한 실천적 성찰을 이끌어내는 작품이며, 오늘날과 같은 불확실한 시대에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윤리란 주어진 규칙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다움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다.
결론: 인간다움은 결국 선택의 문제다
카뮈의 『페스트』는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연약하고 불완전한지를 낱낱이 드러낸다. 그러나 동시에 그 연약함 속에서도 타인을 위해 행동하고, 연대하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러한 태도는 부조리한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에 무릎 꿇지 않고, 인간답게 살아가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재난은 인간을 시험하지만, 그 시험은 단지 두려움이나 생존을 넘어서, 인간으로서 어떤 윤리를 지킬 수 있는지를 묻는다. 『페스트』는 이처럼 우리 모두가 마주할 수 있는 위기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인간다움은 완전함이나 성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 속에서도 타인을 위해 선택하고 행동하는 일상의 윤리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페스트』는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묻는 윤리적 거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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