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결핍에서 공감의 꽃을 피우다 – 『아몬드』 속 인간성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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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평의 소설 『아몬드』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 '윤재'가 세상과 마주하며 점차 공감과 사랑을 배워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감정 결핍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통해 인간성의 본질, 특히 공감 능력의 중요성을 조명하며,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1. 감정이 없는 주인공, 윤재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는 매우 특이한 설정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윤재는 편도체가 작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두려움, 분노, 기쁨과 같은 감정에 반응하지만, 윤재는 그러지 못한다. 겉으로 보기엔 차분하고 침착한 성격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감정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다. 이 설정은 소설의 긴장을 만들어내는 가장 큰 장치이자, 독자들이 윤재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 중심축이 된다. 감정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아몬드』는 감정이 결핍된 인물을 통해 오히려 인간 본연의 정체성을 되묻게 만든다. 윤재는 감정이 없지만 그 속에서도 도덕과 책임, 그리고 인간다움에 대해 고민하며 살아간다. 이 점은 단순히 윤재를 ‘감정이 없는 괴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섬세하고 진중하게 인간 내면을 조명하려는 작가의 시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시선을 통해 작가는 독자에게 감정이라는 것이 반드시 눈물과 웃음, 분노와 같은 외적인 반응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감정을 느끼지 못해도 인간은 배울 수 있고, 변화할 수 있으며, 결국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아몬드』는 인간 본성의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2. 상처와 만남, 그리고 변화의 여정 윤재의 삶에 가장 큰 전환점이 되는 사건은 어머니와 할머니가 한꺼번에 사고를 당하며 세상을 떠난 후부터다. 평생 윤재를 보호하며 살아왔던 두 사람이 사라진 순간, 윤재는 처음으로 외부 세계에 던져진다. 더 이상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세상과 마주해야 하는 존재로서, 윤재의 내면은 그제서야...

셰익스피어 『리어왕』, 왕좌와 가족 사이의 비극적 선택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은 권력과 가족 간의 갈등이 빚어낸 비극적 운명을 다룬다. 왕권을 세 딸에게 분할한 결정은 곧 아버지로서의 사랑과 왕으로서의 권위를 잃는 시작이었다. 『리어왕』은 인간의 어리석음과 욕망이 어떤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1. 권력의 분할이 부른 비극의 씨앗

셰익스피어의 대표 비극 『리어왕』은 단순한 가족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그 배경에는 중대한 정치적 결단이 자리한다. 리어왕은 세 딸에게 자신의 영토를 나누어 주겠다는 결심을 하며, 그 기준으로 각 딸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평가하겠다고 말한다. 이 결정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권력을 어떻게 분배하느냐의 문제였으며, 결국 왕권의 해체와 정치질서의 붕괴를 초래하게 된다.

고네릴과 리건은 아첨으로 아버지를 만족시키며 땅을 얻는 반면, 막내딸 코딜리아는 진심 어린 말로 거짓을 거부하면서 부친의 분노를 사게 된다. 이 장면은 셰익스피어가 인간 내면의 어리석음과 허영심, 그리고 권위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비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왕은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하자 딸을 추방하고, 결국 권력도 명예도 잃게 된다.

『리어왕』의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왕은 자신의 권력을 분산시키며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도 해체하고 만다. 정치적 주권을 내려놓은 그는 더 이상 왕이 아니고, 가정에서도 존중받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 이것은 단순히 한 인물의 몰락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자가 스스로 그 권력을 잘못 행사했을 때 어떤 사회적, 가족적 비극이 발생할 수 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서사다.

2. 아버지이자 왕으로서의 리어의 정체성 붕괴

리어왕은 단순히 권력을 가진 정치 지도자가 아니다. 그는 동시에 세 딸의 아버지라는 점에서 이중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리어왕』을 통해, 권력과 가족애가 충돌할 때 인간이 얼마나 취약한 존재가 되는지를 드러낸다. 리어는 자신의 딸들을 시험하려 했고, 그 결과로 진심 어린 사랑은 버림받고, 가식과 탐욕이 남게 된다.

왕이라는 지위를 잃자 리어는 곧 사회로부터도, 가족으로부터도 소외된다. 그는 두 딸의 궁정에서 수치와 냉대를 경험하고, 결국 광야를 떠돌며 광기에 빠진다. 이 장면은 단순한 정신적 몰락이 아닌, 인간의 존재 가치가 권력과 관계에 의해 얼마나 좌우되는지를 보여주는 극적인 표현이다.

리어는 점점 정신이 혼미해지면서도 인간 본연의 감정을 더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는 처음으로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체험하고, 진정한 인간애와 동정심을 느끼게 된다. 왕의 권위를 내려놓은 그는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고통과 공감의 본질을 알게 된다. 셰익스피어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이 얼마나 다층적인지를 보여준다. 리어는 더 이상 권력자도, 존경받는 아버지도 아닌 존재로서, 인간이 가진 연약함의 상징이 된다.

3. 자식에 대한 집착과 진정한 사랑의 인식

『리어왕』은 단순히 권력의 문제만이 아니라, 부성애와 인간 관계의 본질을 다루는 작품이다. 리어는 딸들의 말에 집착하며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 욕망은 결국 진심을 왜곡하게 만들었고, 가장 진실했던 막내딸 코딜리아를 외면하게 만들었다. 이는 부모가 자녀에게 사랑을 강요하고 그 표현을 특정 방식으로만 인정할 때 벌어질 수 있는 비극적 결과를 상징한다.

리어는 극의 후반부에서 코딜리아와 재회하며 모든 후회를 토로한다. 그는 코딜리아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였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너무 멀리 와 있었고, 결국 코딜리아는 억울한 죽음을 맞는다. 이 장면은 독자나 관객에게 깊은 슬픔을 남기며, 인간 관계에서 진심을 잃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기시킨다.

셰익스피어는 『리어왕』을 통해 단순한 가족 드라마를 넘어, 인간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갈등을 보여준다. 리어는 딸들에게 사랑받고자 했지만, 그 사랑을 요구하는 방식이 잘못되었고, 결국 그 방식이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이 비극은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이란 상대의 표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교훈을 던진다.


결론

『리어왕』은 단순히 왕의 몰락을 그리는 비극이 아니라, 권력과 사랑, 가족과 인간성이라는 복합적인 주제를 다룬 걸작이다. 리어는 왕으로서도, 아버지로서도 실패한 인물이다. 그 실패는 단지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마주할 수 있는 근본적인 딜레마를 상징한다. 권력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며, 사랑은 어떻게 표현되고 받아들여져야 하는가. 셰익스피어는 『리어왕』을 통해 이 질문들을 독자에게 던진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도 『리어왕』의 메시지는 유효하다. 권력을 가진 이들이 인간적인 관계를 등한시할 때,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진정한 사랑은 말이 아닌 행동과 진실한 감정에서 비롯된다는 사실도 일깨운다. 『리어왕』은 과거의 작품이지만, 지금 우리의 삶에도 깊은 울림을 전하는 고전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