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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결핍에서 공감의 꽃을 피우다 – 『아몬드』 속 인간성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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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평의 소설 『아몬드』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 '윤재'가 세상과 마주하며 점차 공감과 사랑을 배워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감정 결핍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통해 인간성의 본질, 특히 공감 능력의 중요성을 조명하며,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1. 감정이 없는 주인공, 윤재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는 매우 특이한 설정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윤재는 편도체가 작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두려움, 분노, 기쁨과 같은 감정에 반응하지만, 윤재는 그러지 못한다. 겉으로 보기엔 차분하고 침착한 성격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감정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다. 이 설정은 소설의 긴장을 만들어내는 가장 큰 장치이자, 독자들이 윤재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 중심축이 된다. 감정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아몬드』는 감정이 결핍된 인물을 통해 오히려 인간 본연의 정체성을 되묻게 만든다. 윤재는 감정이 없지만 그 속에서도 도덕과 책임, 그리고 인간다움에 대해 고민하며 살아간다. 이 점은 단순히 윤재를 ‘감정이 없는 괴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섬세하고 진중하게 인간 내면을 조명하려는 작가의 시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시선을 통해 작가는 독자에게 감정이라는 것이 반드시 눈물과 웃음, 분노와 같은 외적인 반응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감정을 느끼지 못해도 인간은 배울 수 있고, 변화할 수 있으며, 결국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아몬드』는 인간 본성의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2. 상처와 만남, 그리고 변화의 여정 윤재의 삶에 가장 큰 전환점이 되는 사건은 어머니와 할머니가 한꺼번에 사고를 당하며 세상을 떠난 후부터다. 평생 윤재를 보호하며 살아왔던 두 사람이 사라진 순간, 윤재는 처음으로 외부 세계에 던져진다. 더 이상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세상과 마주해야 하는 존재로서, 윤재의 내면은 그제서야...

『빌러비드』로 본 노예제 이후의 삶 – 인간성을 되찾는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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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는 노예제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 흑인들의 고통과 상처, 그리고 인간성 회복의 과정을 밀도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 소설은 과거의 트라우마가 현재를 어떻게 지배하는지를 보여주며, 인간이 자신을 되찾기 위해 어떤 감정과 기억을 통과해야 하는지를 문학적으로 깊이 있게 탐구한다. 1. 『빌러비드』에 나타난 노예제의 잔재와 트라우마 토니 모리슨의 대표작인 『빌러비드』는 노예 해방 이후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사실상 진정한 자유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 작품의 중심 인물인 세서(Sethe)는 육체적으로는 자유를 얻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과거의 억압과 고통에 갇혀 있다. 그녀가 딸을 죽이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배경에는 노예제의 극단적 비인간화가 자리 잡고 있으며, 이는 단순히 개인의 비극으로 해석되기보다는 당대 흑인 공동체 전체가 겪어야 했던 역사적 현실의 집약체로 보아야 한다. 모리슨은 이 소설을 통해 과거의 기억이 단순히 지나간 일이 아니라, 현재와 끊임없이 교차하며 삶을 지배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유령이 집을 떠돌고, 죽은 자가 되살아나는 비현실적인 설정은 바로 그 '기억의 귀환'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장치이다. 이러한 서사 구조는 과거를 직면하고 극복하는 과정이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고통스럽고 파괴적인 감정의 반복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특히, 세서가 겪는 죄책감과 자기 혐오의 감정은 단지 개인적인 심리 현상에 그치지 않고, 노예제라는 제도적 억압이 한 인간의 내면까지 어떻게 침투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녀의 선택이 옳았는지 그르렀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극단적 선택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현실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 이 소설이 던지는 핵심 메시지이다. 이는 단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인종 문제와 정체성의 문제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2.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고통의 여정 『빌러비드』는 인간성을 박탈당한 존재가...

조지 오웰이 그린 암흑 미래, 「1984」를 통해 본 자유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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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소설 「1984」는 전체주의의 극단적인 모습을 그리며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자유가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감시, 언어의 통제, 사상 검열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개인의 자유는 제도적으로 억압되고, 결국 자유를 인식하는 능력마저 상실하게 된다. 이 글에서는 작품 속 디스토피아 사회 구조를 통해 인간 자유가 어떻게 철저히 파괴되는지를 분석하고, 현대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까지 고찰해보고자 한다. 1. 「1984」 속 디스토피아 사회의 핵심 구조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는 단순한 허구를 넘어 인간 자유의 본질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담고 있는 정치적 경고문이다. 소설 속 세계는 ‘빅 브라더’로 대표되는 절대 권력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전체주의 사회이며, 이 사회는 당이라는 권력 구조가 모든 개인의 삶을 철저히 통제하고 감시한다. 당은 과거의 역사를 조작하고, 현재를 감시하며, 미래를 지배한다. 이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들이 바로 진리성, 사랑성, 평화성, 풍요성 등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각각의 이름은 실제로는 그 반대 역할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진리성’은 사실을 조작하는 기관이며, ‘사랑성’은 고문과 세뇌를 담당한다. 이처럼 권력은 언어조차도 자기 입맛대로 뒤틀며, 전체주의의 본질을 드러낸다. 이 사회에서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감정 표현은 물론 사고의 자유조차 박탈당한다. 텔레스크린이라는 감시 장치는 사생활을 완전히 말살하며, 개인은 언제든지 ‘생각범죄’로 고발당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생각범죄란 체제에 반하는 의심조차 금지하는 개념으로, 인간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저항감마저 부정의 대상으로 삼는다. 또한 이 사회는 ‘2분 증오’와 같은 의식을 통해 집단적인 감정을 조장하고, 개인의 사고를 통제한다. 이런 방식으로 당은 개인의 자유를 제거할 뿐 아니라, 자유라는 개념 자체를 존재하지 않게 만든다. 궁극적으로 오웰이 그린 디스토피아는 단순히 암울한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철저히 설계된 권력의 산물이며, 자유를 ...

「실존주의와 인간 소외, 『이방인』을 통해 본 현대인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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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소설 『이방인』은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으로, 주인공 뫼르소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과 고립된 자아의 실체를 그려낸다. 그는 감정과 사회적 규범에서 분리된 채 세계와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 이는 현대인이 겪는 실존적 소외와 불안을 강하게 반영한다. 1. 『이방인』의 뫼르소, 감정의 배제를 통한 인간 고립의 형상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독특한 성격과 사고방식으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으며, 연인 마리의 사랑 고백에도 무덤덤하다. 이러한 태도는 단순한 냉소나 무관심이 아니라,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인간이 사회적 규범이나 도덕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존재를 인식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뫼르소는 기존의 인간형과는 다른 결을 지닌 인물이며, 이러한 차이점은 사회와의 마찰로 이어진다. 그는 끊임없이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살아간다. 사회는 그가 슬퍼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며, 그의 진실된 반응 대신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감정’을 강요한다. 뫼르소는 그런 기대를 거부하고, 사실대로만 반응하려 한다. 이로 인해 그는 점차 사회에서 고립되어 간다. 『이방인』의 가장 핵심적인 상징은 바로 이 '고립'이며, 뫼르소는 단지 외톨이가 아닌, 실존적 자각을 통해 선택된 외로움 속에 존재하는 인물이다. 그의 감정 배제는 사실상 존재의 본질을 들여다보려는 시도다. 그는 삶과 죽음에 무감한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 실존의 진실에 도달하려는 깊은 사유가 담겨 있다. 뫼르소의 고립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거짓을 거부하고자 했던 결과다. 결국 그는 타인과 소통되지 않으며, 그가 말하는 진실은 사회로부터 외면받는다. 이처럼 『이방인』은 감정의 배제를 통해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서 겪게 되는 소외의 본질을 강하게 드러낸다. 2. 실존주의 철학과 뫼르소의 세계관, 인간 존재에 대한 무심함 실존주의 철학은 인간 존재의 의미를 외부로부터가 아닌, 스스로의 선택과 책임 속에서 찾으려는 사유 체계...

현대인의 욕망을 비추는 거울, 『위대한 개츠비』와 아메리칸 드림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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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개츠비』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 그 이상이다. 1920년대 미국의 번영과 그 이면에 숨은 허위적 욕망, 그리고 인간이 쫓는 아메리칸 드림의 실체를 날카롭게 해부한다. 개츠비의 삶은 현대인의 끝없는 욕망을 반영하는 거울이자, 꿈의 몰락을 보여주는 비극이다. 1. 아메리칸 드림의 본질과 『위대한 개츠비』의 시대적 배경 『위대한 개츠비』가 그리는 시대는 미국 역사상 특별한 시기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찾아온 1920년대는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로 불릴 만큼 경제적 번영과 소비문화가 급속히 확산되던 시기였다. 포드 자동차가 대중화되고, 재즈 음악이 유행하고, 월스트리트는 활황을 맞으며 많은 이들이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는 꿈을 꾸었다. 바로 이때, 미국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이념이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이었다. 아메리칸 드림은 본래 신분이나 출신과 상관없이 노력과 능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이상적 가치였다. 하지만 피츠제럴드는 이 드림이 현실에서는 어떻게 변질되고 소비되는지를 개츠비의 삶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개츠비는 가난한 농가 출신으로, 사랑하는 여인 데이지를 얻기 위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자 한다. 그는 불법적인 수단까지 동원해 부를 축적하며 ‘성공한 남자’의 이미지를 연출하지만, 결국 그의 꿈은 철저히 무너지고 만다. 이러한 비극은 단순히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당시 미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가치관의 전도현상을 비판하는 상징으로 읽힌다. 물질만능주의와 허영심에 사로잡힌 당시의 상류사회는 진정한 인간적 가치를 잃어버린 채, 아메리칸 드림을 껍데기만 남긴 이상으로 전락시켰다. 개츠비의 성공은 허상에 불과했고, 그의 죽음은 아메리칸 드림의 파산을 알리는 비극적 선언과도 같았다. 『위대한 개츠비』는 이러한 시대적 맥락 속에서 단순한 개인의 로맨스가 아닌, 사회 전체의 집단적 욕망과 그로 인한 붕괴를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개츠비가 바라본 이상은 더 이상 순수한 꿈이 아니라...

제인 오스틴 소설에서 계급과 개인: 시대를 거스른 자아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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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19세기 초 영국의 엄격한 계급 사회를 배경으로 개인의 자율성과 내면의 목소리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여성 주인공들은 종종 신분의 한계와 사회적 기대 속에서 스스로의 선택을 주장하며 갈등을 겪는다. 이러한 갈등은 시대를 초월해 인간의 본질적 문제를 통찰하게 만든다. 1: 오스틴 소설 속 계급 구조의 뿌리 제인 오스틴의 작품 대부분은 19세기 초 영국의 시골 젠트리 계급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시기 영국은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전, 뿌리 깊은 지주 중심의 계급 사회가 유지되고 있었다. 귀족, 지주, 중산층, 하인 계급으로 나뉘어진 이 구조 속에서 인물들의 운명은 상당 부분 출신 계급에 의해 결정되었다. 오스틴의 대표작인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 베넷은 하층 지주의 딸로서 상류층인 다아시와의 결혼에 있어 끊임없는 장애물을 마주한다. 이는 단순히 개인 간의 연애를 넘어, 계급 간의 이질성과 통합 가능성을 문학적으로 탐구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특히 다아시의 이모 레이디 캐서린 드 버그와 같은 인물은 귀족 계급의 자만과 폐쇄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스틴은 이러한 구조적 현실을 단순한 풍자나 조롱으로 소비하지 않고, 인물 간의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그녀의 문체는 건조하지만 아이러니를 동반하며, 독자로 하여금 사회 구조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게 한다. 특히 중요한 점은 그녀가 그리는 갈등이 겉으로는 로맨스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은 그것이 계급 이동 가능성과 인간 내면의 자유에 대한 깊은 성찰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스틴은 당대의 여성 작가 중에서도 가장 사회적 통찰이 깊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2: 개인의 선택과 사회적 기대의 충돌 제인 오스틴 소설의 핵심은 등장인물들이 사회적 기대와 개인적 욕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데 있다. 그녀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여성이며, 결혼이라는 하나의 통로만이 사회적으로 허용된 성공 방식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오스틴의 인물들은 단순히 ‘좋은 혼처’를 찾는 데 머물지 않는다. ...

문학으로 읽는 산업혁명, 찰스 디킨스가 남긴 인간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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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산업혁명은 기술과 경제 발전을 이끌었지만 동시에 인간의 소외와 빈곤, 아동 노동 같은 사회문제를 야기했다. 찰스 디킨스는 이러한 시대의 어두운 단면을 문학으로 생생히 묘사하며, 기계화된 사회 속에서 점점 소외되는 인간의 존재를 고발했다. 그의 작품은 산업화의 빛과 그림자를 균형 있게 비추는 문학적 증언이라 할 수 있다. ① 산업혁명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 디킨스의 문제의식 19세기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급속한 기계화와 도시화를 겪으며 세계 경제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의 이면에는 노동자 계층의 빈곤, 비인간적인 작업환경, 아동 노동, 도시 빈민 문제 등이 뒤따랐다. 찰스 디킨스는 이러한 부조리를 날카롭게 포착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가 직접 유년기에 공장에서 일하며 겪은 경험은 작품에 깊은 사실감을 더했다. 특히 『올리버 트위스트』나 『위대한 유산』 같은 작품에서 묘사되는 빈민가의 아이들, 감정이 결여된 관리자들, 계급간의 위화감은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당시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었다. 디킨스는 단순한 비판이 아닌,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작품에 녹여냈다. 산업화로 인해 기계처럼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의 고통, 인간다움이 사라져 가는 사회의 방향성에 대한 경고는 그 당시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유효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그는 문학을 통해 그 시대의 사회 구조를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하며, 당대의 독자들에게 현실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이는 단순한 소설을 넘어선 사회적 실천이었다. ② 디킨스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 본 인간 소외의 실상 디킨스의 소설에는 항상 시대의 모순과 그로 인해 고통받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어려운 시절(Hard Times)』은 산업사회의 냉혹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그레드그라인드'는 교육과 인간관계를 철저히 공장식으로 통제하려는 인물로, 그가 상징하는 것은 바로 인간적인 감정이나 창의성이 말살된 사회다. 루이자나 톰 같은 인물들은 이러한 시스템 속...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중세, 단테가 남긴 문학적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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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은 단순한 서사시를 넘어 중세 유럽의 정치, 종교, 철학을 압축해 놓은 거대한 문화적 기록물이다. 지옥, 연옥, 천국으로 이어지는 여정을 따라가며 우리는 중세인의 세계관과 가치체계를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다. 1: 중세의 신과 인간관을 담은 단테의 서사 단테의 『신곡』은 중세 시대의 종교관과 인간관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문학작품이다. 그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죄를 지닌 존재라고 보았으며, 그 죄에서 벗어나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뜻과 질서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여겼다. 이러한 관점은 『신곡』의 구조 전체에 반영되어 있다. 지옥편에서는 인간의 죄가 얼마나 중대한가를 계층적으로 보여주고, 연옥편에서는 회개의 가능성을 강조하며, 천국편에서는 신의 은총과 완전한 조화를 설명한다. 단테는 단순한 상상력을 통해 천상의 세계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중세의 스콜라 철학과 신학을 토대로 치밀하게 구성된 세계를 창조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은 그의 작품 전반에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어, 죄의 무게에 따라 지옥의 구조가 달라지는 점은 윤리적 논리에 따른 것이며, 천국에서 신의 빛으로 가득 찬 장면들은 중세 기독교의 신비주의적 체험을 반영한다. 단테는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이 철학들을 독자에게 감각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단순히 신화적 상징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 사람들의 철학과 신앙 체계를 함께 이해하게 된다. 무엇보다 단테의 여정은 한 인간이 신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겪어야 하는 도덕적, 영적 성장의 과정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신곡』은 중세의 교리 교육서와도 같은 역할을 했으며, 중세 사회 속에서 인간의 위치와 역할을 규명하고자 했던 단테의 의도가 잘 드러난다. 그러므로 이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문학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중세 유럽인의 삶과 사유 방식을 그대로 들여다보는 체험이기도 하다. 2: 정치와 사회에 대한 단테의 비판적 시선 『신곡』은 단지 종교적 상징만을 담은 ...

고향을 향한 끝없는 항해, 『오디세이아』가 말하는 인간의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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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본능적 욕망, 즉 탐험하고자 하는 의지와 고향을 향한 갈망 사이의 긴장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오디세우스의 항해는 인간의 삶 그 자체를 은유하며, 모험을 향한 갈망과 그로 인해 겪는 고통을 동시에 상징한다. 1. 오디세우스의 항해, 인간 존재의 은유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고향인 이타카로 돌아가기까지 10년이라는 기나긴 여정을 겪는다. 그 여정은 단순히 지리적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적 여정과도 닮아 있다. 오디세우스는 수많은 유혹과 위험, 신들의 장난과 인간적 약점을 통과하며 끊임없이 '나'를 시험받는다. 그는 사이렌의 노래 앞에서 귀를 막고, 키르케의 마법 앞에서 인내하며, 칼립소의 사랑을 뿌리친다. 이 모든 시련은 단순한 장애물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내면의 갈등과 모험에 대한 근본적인 열망을 투영한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안전하고 평온한 일상을 포기하고, 미지의 바다를 항해한다. 이것은 인간이 현실의 안정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를 탐색하려는 욕망, 즉 존재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근본적 본능을 상징한다. 바다는 인간 내면의 혼란과도 닮아 있어, 그를 휩쓸고, 미혹하고, 때로는 그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붙인다. 이처럼 오디세우스의 항해는 곧 인간이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존재론적 여정이며, 이는 우리 각자의 삶과도 깊게 연결된다. 2. 모험에 대한 욕망과 그로 인한 고통의 본질 『오디세이아』는 모험이라는 단어의 이면에 자리한 고통과 대가를 날카롭게 보여준다. 오디세우스는 끊임없이 새로운 땅을 탐험하고 신비로운 존재들과 마주치며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지만, 동시에 그는 극심한 외로움과 상실, 그리고 끝없는 방황 속에서 자신을 소모한다. 이 작품은 탐험이 단순히 영광이나 호기심으로 포장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인간을 파괴할 수도 있는 위험한 욕망임을 강조한다. 오디세우스가 겪는 고통은 그가 영웅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인간이기 때문...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인간 실존의 고민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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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인간 실존의 문제를 깊이 탐구하는 작품이다. 햄릿이 겪는 갈등은 단순한 감정적 고민이 아니라, 존재와 비존재, 자유와 운명, 선택과 책임 사이에서 실존적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인간의 숙명과도 같다. 이 글에서는 『햄릿』에서 드러나는 실존적 고민을 분석하고, 이를 철학적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한다. 1. "To be, or not to be" – 존재에 대한 근본적 질문 햄릿의 가장 유명한 대사인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은 실존적 고민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구절이다. 그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무엇이 옳은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현실에서의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죽음을 통해 이 모든 갈등을 끝내야 하는가? 그러나 죽음이 과연 끝일 것인가? 햄릿은 사후 세계의 불확실성 앞에서 망설이며, 실존주의적 공포 속에서 선택의 무게를 실감한다. 이는 사르트르와 하이데거가 주장한 실존적 불안과 연결된다. 인간은 본질이 정해진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를 만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선택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햄릿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지만, 그 책임을 감당하기 어려워하며 끝없는 망설임에 빠진다. 2. 자유와 운명 사이에서 – 실존적 선택의 어려움 햄릿은 아버지를 살해한 클로디어스를 복수해야 하는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분노에 의한 복수를 택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의 도덕성과 윤리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한다. 살인은 신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며, 복수가 반드시 정의로운 행위인지 확신할 수 없다. 복수를 실행하는 순간, 그는 또 다른 살인자가 되며, 자신 역시 죽음과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이런 고민은 실존주의 철학에서 말하는 "행동의 자유와 도덕적 책임" 문제와 맞닿아 있다. 햄릿의 갈등은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지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